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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43> 해전으로 본 동북아 100년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5-19 14:58

본문

- 해군이 국력이란 믿음 아래
- 경쟁적으로 힘 키운 강대국들
- 청일·러일·아태전쟁 거치며
- 동북아 제해권·영토 점령 안간힘
- 한국전쟁 이후 충돌 막 내려

- 조선도 해군 창설 나섰지만
- 일본서 사들인 양무호·광제호
조선(대한제국)이 해군력을 높이기 위해 두 번째로 사들인 군함 광제호. 일본 가와사키조선이 건조한 배로 1904년 12월 인천항으로 들어와 해안 경비 등에 투입됐다.


- 해안경비·등대순시 역할 그쳐

19세기 말부터 서구 열강과 일본은 제국주의 팽창을 위해 전력을 다해 해군력 건설에 착수했다. 해군력은 식민지와 세력권 확대 그리고 본국과 식민지 사이 해상교통로 확보를 위한 힘의 표상이었다. 동북아에서도 각국 해군력 확장이 시작되면서 동북아를 재편하려는 강국들의 충돌이 발생했다. 지난 100년 동안 동북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양국 전쟁’이 아니었다. 해군력을 통해 동북아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동북아 국제질서’라는 말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했다. 각 국가가 바다로 연결돼 있었고, 동북아는 세계사에 편입돼 있었다. 지금 시점에 다시금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때 그 관계망이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국제신문기사 2019-11-19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1120.22021007971&kid=k2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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