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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32> 명태와 정어리: 남선창고 터에서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3-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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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남선창고 터의 벽. 남선창고 건물은 2009년 철거됐고 현재는 벽돌로 된 벽만 남아있다.

1930년대 청진항의 정어리 집산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이때 정어리가 명태를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 후기 민초 즐겨 먹던 명태
- 함경도 원산 중심 유통 구조가
- 기선 출현 후 부산이 집산지 돼
- 상인들 1900년 ‘북어창고’ 건립

- 1914년 경성-원산간 철도 개통
- 명태영업소 다시 함경도로 복귀
- 남은 창고는 부산 객주들이 매입
- ‘남선창고’라 이름 변경해 운영

- 러일전쟁 이후 함경도는 개발 붐
- 日~만주 뱃길·철도교통망 연결
- 명태·정어리 주축 수산업도 발전
- 홋카이도산도 이때 대량 유입

다시 붉은 벽 앞에서 섰다. 부산역 맞은편 옛 백제병원 곁의 어느 대형마트 주차장. 온몸 으스러져 사라지고 끝내 잔해로 남아 실존을 강변하던 ‘T-800(터미네이터)의 팔’처럼, 붉은 담장은 화려했던 시절의 마지막 기억을 붙들고 있다. 눈을 감고 손을 뻗어 상상의 문을 두드리면 옅은 비린내가 새어온다. 지난 300년 동안 이 땅 사람들에게 육신을 제공했던 어느 물고기이다.

(국제신문기사 2019-08-29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830.22021009062&kid=k2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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