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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24> 초량왜관과 데지마 비교해봤더니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3-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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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도심의 데지마(出島) 유적지에 있는 데지마 축소 모형. 그 옛날 데지마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초량왜관을 그린 옛 그림.

- 노략질 일삼는 일본인 통제하려
- 일정지역 거주 한정한 초량왜관
- 가톨릭 전파 막기 위한 日 데지마
- 모두 자국 사회 보호 목적 설치

- 에도 막부 사절단 연례적 방문
- 조선에서 면사·인삼·쌀 구입 등
- 초량왜관 외교·무역 활발했지만
- 새로운 학문·기술 전파엔 한계

- 데지마에 살던 네덜란드 상관
- 정부 인사 접촉·현상품 증정
- 학교 설립해 의학·과학 등 교육
- 난학의 기초돼 日 발전 견인

초량왜관은 조선 시대 일본인이 입국해 교역하던 동북아 최대 중계무역지였으며, 유명한 동래상인의 활동 근거지로 조선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즉,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된 나가사키의 데지마와 같이, 초량왜관은 조선 시대 외교·경제적 요충지 역할을 수행했던 역사적 장소다. 데지마와 초량왜관은 모두 개항 이전의 외국인 거류지로 문화 및 문물 교류가 있었던 곳이다. 우연한 기회에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인 용두산 공원을 거닐다 근처의 부산근대역사관을 견학했다. 그런데 전시물은 우리가 즐거움과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고 우리 선조가 과거에 ‘당한’, 어두운 역사 위주로 구성돼 있어 안타까웠다.

안 좋았던 역사도 충분히 알아야 하지만, 좋고 밝은 역사에 대한 기록도 함께 전시되면 찾는 사람도 기분 좋아질 것 같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을 찾으려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살펴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서 또다시 아픈 역사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초량왜관과 일본의 데지마의 역사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국제신문기사 2019-06-20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621.22017008707&kid=k2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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