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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8> 임정 100주년, 근대 상하이 돌아보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3-2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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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우캉루에 있는 1924년 지은 아파트. 1920년대에 이미 동북아 최대 도시로 떠오른 상하이의 정취가 스며 있다. 안승웅 제공

근대 시기 상하이에 밀려든 열강들을 비롯한 외국의 군대.

- 수출입 최적지 양쯔강 하구 위치
- 어촌마을 출발해 무역항 됐지만
- 명·청 시기 해안봉쇄정책 실시로
- 1800년대까지 크게 번성 못해

- 아편전쟁 후 난징조약으로 개항
- 영국·미국·프랑스 조계 설치 뒤
- 공장 건설 등 외국인 투자 쇄도
- 공업·상업도시로 눈부시게 발전

- 일본·동남아·유럽과도 연결돼
- 강대국 정보·여론 수집 용이

- 한국·베트남 등 식민지 국가
- 반제국주의 운동 활발히 펼쳐

몽양 여운형은 자서전에서 상하이를 두고 “문화가 압서고 인문이 개발되엇고 또 교통이 편하야 책원지(策源地)로써 가장 갑이 있는 곳”이라 평가했다. 사실, 1920~30년대 상하이는 동북아 최대 도시였으며, 북미·일본·중국·동남아·유럽을 왕래하는 윤선(輪船)이라면 모두가 거쳐 가는 세계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영국·미국·프랑스의 조계(租界)가 설치돼 있어 당시 강대국들이 펼치는 정치외교전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상하이는 독립운동가들이 세계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국제적 여론을 형성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상하이는 1만 8000㎞에 달하는 중국 남북 해안선의 중간에 위치하며, 중국을 남북으로 구획하는 최대 강인 양쯔강(揚子江)의 하구에 자리 잡고 있다. 양쯔강 일대 저장성(浙江省)과 장쑤성(江蘇省)은 예로부터 유명한 곡창지대였으며, 면·비단 등과 같은 수공업 제품 또한 발달한 지역이었다.

양쯔강은 수심이 깊고 중국 내륙 깊숙이 연결돼 있어, 춘추전국시대부터 이 일대에는 수로를 이용한 물자 수송이 발달해 있었다. 따라서 상하이는 태생부터 양쯔강 일대의 산물을 한곳에 모아 다른 지역으로 수출할 수 있고, 다른 지역 물건을 수입하여 내륙으로 퍼트릴 수 있는 최적지였다.

(국제신문기사 2019-02-28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301.22022008893&kid=k2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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