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17> ‘빵의 교류사’와 한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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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빵을 받아들인 일본인들이 팔소를 응용해 1874년 개발한 팥빵(왼쪽 사진)은 일본에서 빵의 판도를 바꾸었다. 오른쪽 사진은 1870년부터 도쿄 긴자에 자리 잡은 전통의 빵집 ‘기무라야총본점’의 현재 모습.
일본 메이지시대의 빵 제조소를 그린 그림. 출처=기무라야총본점 120년사
- 16세기 日 규슈 가고시마 표착
-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빵 전래
- 메이지 정부 때 군인에게 보급
- 일반 서민에겐 낯설었던 음식
- 일본인 취향 맞는 팥빵 등장 후
- 식빵·잼빵·크림빵 등 만들어져
- 일제강점기 빵 군납 정책 지속
- 당시 사업에 참여한 조선인들
- 광복 뒤엔 일본식 빵집 운영
- 원조물자로 공급되며 대중화
‘빵’이라는 말은 일본어로 ‘팡(パン)’이며 이는 포르투갈어의 ‘팡’이 그대로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 서양의 빵이 전래된 것은 1543년 규슈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인이 표착한 때였다. 포르투갈인들은 소총과 함께 빵을 전했다. 1587년 막부의 쇄국령에 따라 기독교인이나 외국과의 교역이 금지되면서 빵도 잠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에서만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러다 1840년 시작된 아편전쟁을 계기로 일본인은 다시 빵을 먹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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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日 규슈 가고시마 표착
-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빵 전래
- 메이지 정부 때 군인에게 보급
- 일반 서민에겐 낯설었던 음식
- 일본인 취향 맞는 팥빵 등장 후
- 식빵·잼빵·크림빵 등 만들어져
- 일제강점기 빵 군납 정책 지속
- 당시 사업에 참여한 조선인들
- 광복 뒤엔 일본식 빵집 운영
- 원조물자로 공급되며 대중화
‘빵’이라는 말은 일본어로 ‘팡(パン)’이며 이는 포르투갈어의 ‘팡’이 그대로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 서양의 빵이 전래된 것은 1543년 규슈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인이 표착한 때였다. 포르투갈인들은 소총과 함께 빵을 전했다. 1587년 막부의 쇄국령에 따라 기독교인이나 외국과의 교역이 금지되면서 빵도 잠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에서만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러다 1840년 시작된 아편전쟁을 계기로 일본인은 다시 빵을 먹게 됐다.
서양에서 빵을 받아들인 일본인들이 팔소를 응용해 1874년 개발한 팥빵(왼쪽 사진)은 일본에서 빵의 판도를 바꾸었다. 오른쪽 사진은 1870년부터 도쿄 긴자에 자리 잡은 전통의 빵집 ‘기무라야총본점’의 현재 모습.
1842년 막부의 명령으로 이즈반도 니라야마의 에가와 다로자에몬이 외국의 침공에 대비하는 군량으로 보존·이동이 쉬운 빵을 만들었다. 에가와는 데지마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사쿠타로에게 제빵 기술을 배웠으며 자신이 사슴 사냥을 하면서 휴대용식량으로는 빵이 제일 좋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에가와가 죽은 1855년 미토 번에서도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의학을 공부하던 시바타 호안이 군사 식량으로 비스킷 형태의 빵을 만들고 있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군대의 급식이던 쌀밥으로 인한 각기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가루로 만든 빵을 군인에게 공급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전쟁에 참가한 일본은 독일 포로 병사에게서 독일식 빵의 제법을 배운다. 이어 미국에서 설탕이나 버터를 풍부하게 사용한 빵의 제법이 전해졌다.
(국제신문기사 2019-05-02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503.22017000585&kid=k27003>
일본 메이지시대의 빵 제조소를 그린 그림. 출처=기무라야총본점 120년사
- 16세기 日 규슈 가고시마 표착
-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빵 전래
- 메이지 정부 때 군인에게 보급
- 일반 서민에겐 낯설었던 음식
- 일본인 취향 맞는 팥빵 등장 후
- 식빵·잼빵·크림빵 등 만들어져
- 일제강점기 빵 군납 정책 지속
- 당시 사업에 참여한 조선인들
- 광복 뒤엔 일본식 빵집 운영
- 원조물자로 공급되며 대중화
‘빵’이라는 말은 일본어로 ‘팡(パン)’이며 이는 포르투갈어의 ‘팡’이 그대로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 서양의 빵이 전래된 것은 1543년 규슈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인이 표착한 때였다. 포르투갈인들은 소총과 함께 빵을 전했다. 1587년 막부의 쇄국령에 따라 기독교인이나 외국과의 교역이 금지되면서 빵도 잠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에서만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러다 1840년 시작된 아편전쟁을 계기로 일본인은 다시 빵을 먹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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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日 규슈 가고시마 표착
- 포르투갈인이 최초로 빵 전래
- 메이지 정부 때 군인에게 보급
- 일반 서민에겐 낯설었던 음식
- 일본인 취향 맞는 팥빵 등장 후
- 식빵·잼빵·크림빵 등 만들어져
- 일제강점기 빵 군납 정책 지속
- 당시 사업에 참여한 조선인들
- 광복 뒤엔 일본식 빵집 운영
- 원조물자로 공급되며 대중화
‘빵’이라는 말은 일본어로 ‘팡(パン)’이며 이는 포르투갈어의 ‘팡’이 그대로 정착한 것이다. 일본에 서양의 빵이 전래된 것은 1543년 규슈 가고시마 남쪽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인이 표착한 때였다. 포르투갈인들은 소총과 함께 빵을 전했다. 1587년 막부의 쇄국령에 따라 기독교인이나 외국과의 교역이 금지되면서 빵도 잠시 모습을 감춘다. 하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에서만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러다 1840년 시작된 아편전쟁을 계기로 일본인은 다시 빵을 먹게 됐다.
서양에서 빵을 받아들인 일본인들이 팔소를 응용해 1874년 개발한 팥빵(왼쪽 사진)은 일본에서 빵의 판도를 바꾸었다. 오른쪽 사진은 1870년부터 도쿄 긴자에 자리 잡은 전통의 빵집 ‘기무라야총본점’의 현재 모습.
1842년 막부의 명령으로 이즈반도 니라야마의 에가와 다로자에몬이 외국의 침공에 대비하는 군량으로 보존·이동이 쉬운 빵을 만들었다. 에가와는 데지마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사쿠타로에게 제빵 기술을 배웠으며 자신이 사슴 사냥을 하면서 휴대용식량으로는 빵이 제일 좋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에가와가 죽은 1855년 미토 번에서도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의학을 공부하던 시바타 호안이 군사 식량으로 비스킷 형태의 빵을 만들고 있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군대의 급식이던 쌀밥으로 인한 각기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밀가루로 만든 빵을 군인에게 공급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전쟁에 참가한 일본은 독일 포로 병사에게서 독일식 빵의 제법을 배운다. 이어 미국에서 설탕이나 버터를 풍부하게 사용한 빵의 제법이 전해졌다.
(국제신문기사 2019-05-02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503.22017000585&kid=k27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