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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12> 복음을 위해 바다를 건넌 선교사들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3-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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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가고시마에 있는 하비에르 내항기념비. 예수회 소속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1549년 이곳에 도착했다. 오른쪽은 부산 금정구 오륜대 순교자 성지에 세워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 위키피디아·국제신문 DB

- 교황 파견 사명받은 ‘예수회’
- 가장 먼저 日 가고시마 도착
- 중국 포교를 목표로 선교 시작

- 1605년 베이징에 천주당 건립
- ‘천주교’라 이름 짓고 세력 확산
- 조선, 교리서·서신 왕래만으로
- 신부·선교사 없이 천주교회 설립

- 예수회 사제들, 복음 활동 함께
- 동양 고전 해석해 유럽에 알려
- 문명 교류 산파 역할도 담당

머나먼 뱃길을 따라 동북아해역에 도달한 서양인들은 상인만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동아시아인들에게 전파한다는 일념으로 고난의 항해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선교사들이다. 동북아해역에 아직 남아 있는 서양인의 흔적, 상관(商館)이나 묘지 외에 가장 많은 것이 종교 관련 유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 유적들은 마냥 과거의 흔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다. 왜냐하면 서양 선교사들의 동양 전도에 대한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러 동북아 바다로

가장 먼저 동북아해역에 도착해 동아시아 선교의 시작을 알린 이들은 천주교의 예수회 선교사였다. 프란치스코회나 도미니코회, 베네딕토회 등 많은 천주교 선교단체가 동아시아 선교를 목표로 했지만, 예수회가 그 선교의 선봉이 된 것은 예수회 탄생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1540년 수도회로서 로마교황청 인가를 받은 예수회는 전통적인 수도회가 내세우는 삼대 서원(誓願)인 청빈, 정결, 순명 외에 구원과 믿음의 전파를 위해 맡겨지는 교황의 파견 사명 즉 선교를 지체없이 수행하겠다는 네 번째 서원을 받는다.
국제신문기사 2019-03-28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329.22017010816&kid=k2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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