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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35> 1876년 일본으로 간 조선의 수신사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3-25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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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를 정사로 한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도착한 모습을 그린 그림. 당시 영국 신문에 실린 삽화라고 한다

제1차 수신사의 정사로서 1876년 일본을 둘러본 김기수(1832~미상)의 사진.

- 강화도조약 협상 과정서 일본이 초청
- 김기수 포함 76명 사절단으로 파견

- 부산항서 근대선박 타고 요코하마로
- 조선소·공장 등 방문 … 고종도 관심
- 金, 신문물 작동 원리 등 꼼꼼히 기록
- 귀국 이듬해 견문기 ‘일동기유’ 펴내

- 당시 시대상 근대화 필요성 못 느껴

필자는 1993년부터 일본 요코하마에서 6년 정도 생활하면서 자주 생각하곤 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언어의 장벽에 관한 것이었다. 만약 한국이 지금 미국이나 옛날의 영국처럼 세계 최대 강대국이라면, 수많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럼 굳이 일본에 와서도 일본어를 배우려고 애쓰지 않고 한국어를 쓰면서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왜 한국은 근대화가 늦어졌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서양의 근대 문명이 조선에 유입되던 개항 시기 일본에 첫 번째 수신사(修信使)로 파견된 김기수(金綺秀)의 견문 활동을 통해 수신사가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1876년 2월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체결 협상 과정에서 일본의 요청으로 조선은 그해 5월 22일 김기수를 정사로 한 76명의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대마도 등지를 거치며 문물을 전해주던 통신사와는 달리, 문물을 받는 입장이던 수신사는 부산항에서 일본의 증기선 황룡호(黃龍號·고류마루)를 타고 대마도에 들르지 않고 바로 시모노세키로 가서 1박 하고, 고베를 거쳐 29일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요코하마에서 기차를 타고 도쿄 신바시역까지 간 조선사절단 일행은 가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인 엔료칸(遠遼館)에 도착했다. 증기선과 기차라는 근대적 교통기관을 이용해 출발한 지 일주일 만에 도쿄에 들어섰다.

(국제신문기사 2019-09-17 발췌)

기사전문<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90918.22023007834&kid=k27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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