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해역인문학 자료총서 1> 세종실록 속의 일본 대마도 기사 1

  • 저자
    이근우, 공미희 편
  • 출판사
    소명출판
  • 출판년도
    2018.08.31

본문

<해역인문학 자료총서 1> 세종실록 속의 일본 대마도 기사 1 (ISBN 979-11-5905-323-8 93910)

<출판사 서평>

대마도?일본과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 세 가지를 살피다

1. 일본에 대한 기록

14세기 이후 일본은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지방의 무사들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왜구가 발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1350년부터 대규모로 고려를 약탈하기 시작한 왜구들은 고려 멸망의 한 원인이 되었고, 이성계가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 왜구에 대한 기록은 일본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일시, 장소, 규모, 피해 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해동정을 촉발한 1419년 5월의 왜구에 대해서는 최초로 목격된 시점부터 황해안을 북상하여 요동반도를 공격하고 다시 황해안을 남하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정벌에 이르는 논의, 대마도 정벌 상황, 재정벌 논의, 조선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파견된 일본 사신 양예의 존재, 이에 대한 조선의 송희경 파견 등에 관해서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2. 조선과 일본의 통교 양상

?세종실록?을 통해서는 조선과 일본의 통교의 양상 역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통교자를 비롯하여 통교하는 과정에서 가져온 물품의 종류와 규모, 이에 대한 조선의 대응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통교자 중에는 ?실록?에만 보이는 인물도 있으며, 일본 자국에서 생산되는 물품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물품도 입수하여, 조선에 가져 왔고 조선은 이에 대해서 목면 등으로 답례하였음을 살펴 볼 수 있다.
다음은 세종 5년 1월 1일 구주총관 원의준이라는 인물이 보내온 물품의 목록이다.

예물
소목(蘇木) 1천 근(斤), 서각(犀角) 3개(介), 곽향(藿香) 40근, 정향피(丁香皮) 20근, 유황(硫黃) 5천 근, 명반(明礬) 4백 근, 절부(折敷) 20매(枚), 소향유(蘇香油) 2근, 금란(金欄) 1단(段), 감초(甘草) 20근, 주분(朱盆) 2개, 당주(唐朱) 1근
제사에 쓰도록 바치는 물품
소면(素?) 30근, 갈분(葛粉) 15근, 침향(沈香) 2근, 납거(蠟炬) 50개, 온주귤(溫州橘) 1천 개
대마도인을 돌려보내 줄 것을 청하면서 바친 물품
유황 2천 5백 근, 소목 2천 근, 곽향 10근, 서각 2본(本), 백단(白檀) 30근, 향(香) 8근, 동(銅) 2백 근, 천궁(川芎) 30근, 파두(巴豆) 30근, 육두구(肉豆寇) 20근

다양한 물품이 열거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현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에서만 자생하는 ‘육두구肉豆寇’도 보인다. 육두구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태종부터 성종 때까지 단 7차례만 보이며, 중종 대에 이르면 중국조차도 입수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물품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앞으로 밝혀야 할 부분이다.
3. 조선 수군과 수군 기지

?실록?에 보이는 또 다른 자료군은 조선 수군과 수군 기지에 관한 것이다. 조선은 대외적으로 크게 3가지 과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명과의 관계’, 둘째는 ‘여진족과의 관계’, 셋째는 ‘일본과의 관계’였다. 그중에서도 왜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선은 강력하고 효율적인 수군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세종 대는 수군이 5만에 이를 정도였고, 이는 현재 우리나라 해군의 수에 필적한다. 수군은 선단을 구성하여 왜구가 출몰하는 지역에 배치되어 해상에서 이를 격퇴하는 전술을 취하고 있었다. 왜구의 침입을 제대로 막지 못한 수군 장수는 참형에 처해지거나, 장수직을 박탈당하고 일반 수군으로 편입되기도 하였다. 조선이 왜구를 막으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군의 정박지는 빈번하게 이동하였는데, 이는 왜구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조선 초기의 바다는 노략질하기 위한 왜구의 적선, 이를 제압하기 위한 조선 수군의 군선, 동남아시아의 물품까지 실어 나르는 통교자들의 교역선, 외교를 위하여 파견된 사신의 선박이 끊임없이 왕래하는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편자
이근우(李根雨, Rhee, Kun Woo)_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한국학대학원 석?박사 졸업. 현재 부경대 사학과 교수 및 대마도연구센터 소장. 저서로는 ?전근대한일관계사?, ?고대왕국의 풍경?, ?훈민정음은 한글인가?, ?대한민국은 유교공화국이다?, ?조선지도 속의 대마도?가 있으며, 역서로는 ?한국수산지? 1?3, ?일본서기? 상?중?하, ?속일본기? 1?2?3?4, ?영의해? 상?하, ?조선사료 속의 대마도?가 있다.
공미희(孔美熙, Kong, Mi Hee)_ 부경대 대학원 문학박사. 현재 부경대 HK 연구교수. 연구논문으로는 ?근대 이문화 교류공간으로서의 항구도시 부산?이 있다.

<목차>


 발간사 003
편자 서문 006

제1부/ 『세종실록』의 대마도·일본 관련 기사의 개요

제1장 기해동정 13
1. 기해동정 13
2. 기해동정의 발단 15
3. 정벌 과정 18
4. 재정벌 논의와 사후처리 22

제2장 중요인물 27
1. 조선의 사신들 27
2. 대마도와 중요인물 33
3. 구주九州의 정세와 통교자 54
4. 본주本州의 통교자 62

제2부/ 조선 사료 속의 대마도-『세종실록』

즉위년 (1418 戊戌/일본 응영(應永) 25年) 75
세종 1년 (1419 己亥/일본 응영(應永) 26年) 104
세종 2년 (1420 庚子/일본 응영(應永) 27年) 271
세종 3년 (1421 辛丑/일본 응영(應永) 28年) 335
세종 4년 (1422 壬寅/일본 응영(應永) 29年) 389
세종 5년 (1423 癸卯/일본 응영(應永) 30年) 435
세종 6년 (1424 甲辰/일본 응영(應永) 31年)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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