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지 논문

해역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부산항 - 부산 연구를 위한 이론적 시탐(試探)

  • 저자
    서광덕
  • 논문지명
    인문사회과학연구
  • 게재연도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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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동북아해역에서 개항을 맞이한 해역도시와 그 도시간의 네트워크 즉 해역네트워크의 관점을 빌려 부산항 연구의 방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시대부터 부산은 일본인들의 무역을 위해 ‘倭館’이라는 공간을 제공했다. 1876년 개항이후 ‘왜관’은 일본인의 專管居留地로 변모하여, 해방이전까지 존속했다. 이와 같이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산은 역사적으로 일본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釜山學 또는 釜山性(로컬리티)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그렇지만 근대 이후 부산항에는 일본인들 외에도 중국인과 서양인들 역시 방문하거나 거주하기도 했다. 자료의 부족으로 관련 연구가 활성화되지는 못했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시카와 료타(石川亮太) 등의 아시아交易圈論 연구자들의 성과는 이를 반증한다. 동북아해역내 華商의 활동과 부산 淸國租界의 성립은 대표적인 예다. 일제 강점기 부산은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입구로서 기능했다. 釜關連絡船을 타고 와서 만주를 향해 가려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부산항 인근에 건설된 부산역은 바로 이들을 만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일찍이 건설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 부산은 羅津, 淸津과 함께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항구로 적극 활용되었다. 이렇게 일본에 의해 부산항의 기능 그리고 거주인들의 직업 등이 규정받으면서 부산항은 종래의 개항장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지만, 부산을 통한 물동량을본다면 여전히 물적 네트워크 그리고 인간의 이동이라는 인적 네트워크의 매개적인 항구로서 기능해왔다. 해방이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산은 종래의 모습에 즉 일본이 남기고 간 식민지 유산에 피난민의 도시라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흔적 위에 전쟁의 참화로 인한 단층이 쌓이고 여기에 근대화에 따른 해양산업의 탄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부산항의 역사를 네트워크, 이동,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살폈다.


주제어 : 해역네트워크, 개항장, 부산항, 항로, 조공시스템, 아시아교역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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