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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수호조규」 이후 한일병합 이전까지 조선에는 총 10개의 항구가 개항되었다. 이들 개항지에서의 일본 어민들의 통어가 합법화되기 시작하며 자유이주어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03년 조선해수산조합이 창립되면서 일본 각 지방에서 지원을 받는 보조이주어촌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이들 개항장에 조성된 이주어촌이나 보조이주어촌에서 고토히라신사가 창건되기 시작한 것이다.고토히라신은 일본의 어촌에서 해양신으로 스미요시, 에비스와 함께 가장 많이 모셔지는 신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아마테라스가 황조신으로 일본 민족의 우월성 혹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모셔졌다면 고토히라는 개항장으로의 일본 어민의 진출과 해양신앙을 나타낸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1909~1912)에 따르면, 구한말 조선의 개항장 및 보조이주어촌에 고토히라신를 비롯한 해양신사는 8사(31%)가 창건되었다. 그러나 해방 전까지 『통계연보』에 기재된 고토히라신사는 총 6사(0.6%)에 불과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구한말 개항장을 비롯한 보조이주어촌에 창건된 고토히라신사의 건립 양상과 변모 양상을 살펴본 후 식민지 조선에서 고토히라신사의 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식민지 조선의 고토히라신사에 있어서 해양신앙을 검토하여 식민지 이주어촌에서 고토히라신사가 제일 먼저 창건되는 배경을 파악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개항 이후 조선의 연근해로 이주한 일본인 이주 어민과 해양신앙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본 연구는 개항 도시에 창건된 거류민봉제신사의 해양신앙을 통해 식민지 신사의 다원성과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