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본 논문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시대에 걸친 일본어교육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행해진 일본어교육의 양상을 살펴보고, 해방 이후 왜색일소, 일본문화와 일본어 잔재가철저히 배제되는 역사적·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생겨난 일본어교육의 필요성 대두와 대중들의 인식에 대하여정치‧사회적 문맥과 상호작용에 입각하여 통사적으로 살펴보았다. 한국은 과거 35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아 ‘국어’로서의 일본어를 강요당해 온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한일합방 이전부터 일제의 통감부는‘사립학교령’을 공포하여 사립 교육기관을 강제적으로 탄압하였고,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식민지 조선의 학령기 아동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도권 교육기관의 조선어 과목은 수의(随意)과목으로 전락하였고 일본어 과목명은 국어로 바뀌었고, ‘학술 강습회’와 같은사회적 교육기관은 일본의 간섭과 탄압을 통해 일본어 전문 교육기관으로 변질되어 갔다. 일본어교육은 일제와 친일단체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고 일본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지역에서는 일본어 학습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해방 이후 1960년까지 철저한 반공, 반일 정책을 취했고 학교 등의 교육시설에서는 일본어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공백기(1945년-1960년)로 볼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왜색 문화에 대한 비판의 형태로 반일 및배일 관념이 매우 심화된 시기였다.1965년 한일기본조약 협정 이후, 한일 간 활발한 교류와 함께 문교부의 사설 일본어 강습소의 허가, 대학에서의 일본어과 설치 승인 등, 정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일본어교육이 재보급되는 시기(1961년-1971년)로 접어들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협정 이후 양국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일본 기업이 저렴한 한국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한국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무역 교류가 증대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어 수요는 증가했고 일본어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였다. 1972년 일본어 강습소가 허가되고 1973년부터 일본어가 고등학교제2외국어로 지정된다. 재차 일본어교육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어려웠지만 그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고 박정희 정권은 나라발전을 위해 필요한 언어임을 강조하였고 ‘국민교육헌장’과 ‘국적있는교육’을 제창하면서 일본어교육을 정당화했다. 이후 일본관련 학술단체의 설립과 대학에서의 일본어 관련 학과의 개설 등으로일본어교육이 정착하면서 도약기(1972년-1979년)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