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세기 중엽 상하이가 개항된 이후 중국을 대표하는 근대 도시로 성장하는 가운데 동북아해역 지식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상하이가 근대 동아시아에서 서학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중심도시가 된 데에는 서양인 선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이 서양 선교사들은 여러 단체들을 만들어 중국인들에 대한 선교와 지식 보급을 목적으로 교육 및 출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렇게 생산된 한역서학서는 상하이를 비롯하여 중국의 각지로 전파되었고, 심지어 조선과 일본에도 전해졌다. 이렇게 하여 상하이는 근대 동북아해역 지식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막부말부터 메이지 시기에 이르기까지 일찍부터 상하이와의 무역을 통해 상하이에서 생산되는 한역서학서를 많이 수용했지만, 조선의 경우는 쇄국정책으로 인해 단지 베이징과의 육로 교통망을 통해 한역서학서를 수용하였고 그것의 종류 역시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조선 역시 시기는 일본보다 다소 늦지만 개항이후 관료들이 상하이를 방문하고 또 선교사들에 의해 상하이에서 생산한 서학이 수용되었다. 또 이처럼 상하이에서 생산된 서학이 중국을 비롯해 조선과 일본에 전파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통망이 중요하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북아해역의 교통망에 대한 연구는 바로 상하이 지식네트워크 형성에 대한 연구의 토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