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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전시 상황에서 여학생을 대상으로 시행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규 교과를 대체하여 운영된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살펴보고 이러한 여학생 전시교육이 전후 국가 기반 조성과 국가 재건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아울러 살펴보았다.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에는 많은 피란민들이 유입되어 이들을 수용할 학교나 교실이 부족하였고 교육 자료의 수급도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1년 2월 문교부에서 「전시하 교육특별 조치요강」을 공포하였고 피란수도 부산의 교육제도 및 교육과정은 이에 맞춰 긴급하게 전개되었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남학생들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학도병으로 징집되었고 이로 인해 피란학교에는 남학생이 줄고 여학생의 수가 더 늘어났다. 이 시기를 전후로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의 운영이 활발해졌으며 여학생의 진학을 위해 여자고등학교도 신설되었다. 이처럼 전시 하에서 군 징용으로 남성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한글을 배우고 기술을 익혀야 했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는 전후 재건에 필요한 인적 자원의 육성을 위해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전쟁 중에는 정규 교과를 운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 교육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기의 피란수도 부산의 여학생 교육은 근대 시기에 태동한 여성 교육이 전시하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숙, 발전하였던 시기였다. 전근대적인 여성 교육에서 탈피하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이 근대 여성교육으로 이어졌다. 여학생들은 중등교육을 위해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한 이후 고급 인력으로 성장하여 전후 국가 재건의 인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피란수도 부산의 여학생 교육을 되살피고 발굴하는 작업은 교육사적인측면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