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자료실

Total 178건 5 페이지
    • 제 목
      한국전쟁기 중학교 국어 교과서 내용 및 체계 연구-실제 활용 양상을 중심으로
    • 저자
      주현희
    • 발행처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발행년
      2022.03.31.
    본 연구에서는 한국전쟁기 간행된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내용 구성 및 활용 양상을 살펴보고 피란수도 부산에서 국어 교육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먼저 전시 상황에서 운영된 교수요목 및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이러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편찬된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교육 자료가 전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당시 피란학교의 교무일지 등의 학교사 자료와 아울러 살펴보았다. 전시 상황에서 피란수도 부산의 학교 교육은 문교부가 공포한 「전시하 교육 특별 조치 요강」에 맞춰 긴급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시 상황에서 피란학교에서는 교사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규교과 과정을 운영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전시 상황에 맞추어 정규교과 과정은 군 위문 활동 등의 특별 활동으로 대체하였으며 국어 교육 또한 이러한 상황에 맞춰 이루어졌다. 국어 교과서도 국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글이나 위문편지 등을 학습 내용으로 구성하여 편찬하였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중·고등학교 국어교육 연구 -교육과정의 편제 및 교과서 내용 구성을 중심으로-
    • 저자
      주현희
    • 발행처
      대구가톨릭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 발행년
      2022.03.31.
    In this study examined how Korean language education was developed in the refugee capital of Busan during the Korean War and how it was operated by refugee School. The teaching points established during the U.S. military period were not properly reorganized due to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when the curriculum reorganization was discussed, and each school partially modified and used the teaching points of the U.S. military period according to the war situation. During the Korean War, many refugee schools were established in the refuge capital of Busan, but it was difficult to conduct regular classes due to insufficient supplies and educational facilities. However, despite difficulties in the operation of the regular curriculum under special circumstances during wartime, education continued. Accordingly, the refugee School operated school classes by applying a curriculum according to their respective conditions. A ceasefire agreement was signed in July 1953, and the curriculum was revised and promulgated on April 20, 1954. Accordingly, each school also returned to school to reorganize the school system, and school classes were normalized. In addition, Korean language education was actively conducted at each school. Wartime education in the refuge capital of Busan, was developed into real-life-oriented Korean language education that overcomes the disconnection of education and uses Korean in real life. And this can be said to be the basis for the reconstruction of post-war Korean language education. In this study, how Korean language education developed during the Korean War was examined through the U.S. military regular and middle and high school curriculum during the Korean War, and compared with the post-war revised and promulgated curriculum. In addition, the curriculum is intended to substantially implement education, and it is the textbook that consists of specific educational materials specified in the curriculum. Therefore, based on this curriculum, it was also examined how Korean textbooks were compiled and what contents and composition systems Korean textbooks published during the Korean War had.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 해군의 진해경비부 설치와 한반도 해역 작전 활동
    • 저자
      김윤미
    • 발행처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발행년
      2022.03.31.
    이 글에서는 1941년 창설되어 한반도 해역을 담임했던 진해경비부의 조직과 역할을 고찰했다. 일본 해군이 처음 한반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한 것은 러일전쟁 시기였다. 거제도 송진포에 임시 해군기지를 건설한 후, 대규모 군주둔지를 물색했다. 진해를 군항으로 설정한 일본은 한반도 해역 방어를 임무로 하는 진해요항부를 설치하고, 진해경비부로 재편했다. 일본은 진해의 해군 조직을 유지하며 주둔의 성격과 영역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태평양전쟁 직전 진해요항부는 폐쇄하고, 1941년 11월 20일 진해경비부를 설치했다. 교통로 확보와 주요 항만 방어를 하며 쓰시마해협의 항로 확보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소련 해군 방어에 중점을 두었다. 해상통제를 목적으로 통상보호부를 설치하고, 진해해군항공대를 편성하여 선박호위도 시작했다. 그러나 1945년 4월에 들면서 남쪽 항로는 모두 닫혔고, 유일한 항로는 동해뿐이었다. 바다를 통한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근간은 해군이었다. 해군에 대한 연구는 식민지 지배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일본군 연구의 일부를 규명할 수 있다는 점, 조선인 강제동원 규명을 위해 일본 해군 연구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 해군기지의 현장을 파악하고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한반도 해역을 경비했던 진해경비부의 활동은 현재까지도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진해 군항이다. 진해는 한반도 주둔 일본 해군의 본부였고, 한국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진해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이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中·臺·美의 금문도와 대만해협에 대한 인식변화 ― 냉전시기 대만해협을 둘러싼 중국·대만·미국 간 갈등과 대립…
    • 저자
      이가영
    • 발행처
      대한중국학회
    • 발행년
      2022.03.31
    냉전시기 대만해협은 중국과 중화민국의 국내외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역할과 성격을 달리하며 동아시아 냉전지형의 변화과정에 핵심적인 무대가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 발생한 고령두전투에서 대만해협은 중국과 중화민국 간 세력싸움의 전선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동아시아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으로 분할되면서, 대만해협은 동아시아 냉전 진영을 가르는 분계선이 된다. 이후, 제1차 대만해협위기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며 대만해협은 냉전 지영의 확대를 위한 전장으로 변모하였으나, 무력충돌의 확대로 인해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안전의 위협이 되자 대만해협은 양자 간의 갈등을 안정시키는 진영봉쇄의 울타리가 된다. 이후, 중동 혁명의 지원과 대만해방이라는 기치를 내건 중국이 제2차대만해협위기를 시작하면서 대만해협은 또 다시 열전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중국과 미국의 회담이 진행되면서 대만해협은 중국과 중화민국간의 선전전이 진행되는 이념 전쟁의 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근대 동아시아의 전쟁과 바다-『海國圖志』의 서술 시각을 중심으로
    • 저자
      서광덕
    • 발행처
      중국어문학회
    • 발행년
      2022.03.31
    청나라가 해양력 향상을 위한 근대적 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은 아편전쟁에서의 패배였다. 아편전쟁이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견인한 사건이라면, 동아시아의 근대성은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편전쟁은 해전이고, 그 이후에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전쟁의 대다수가 海戰이었다. 아편전쟁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영국과의 해전을 통해 세계를 파악하고, 청왕조의 변화를 모색하게 하였다. 이를 대변한 텍스트가 바로 『해국도지』이다. 이 책은 세계지리서라는 성격으로 인해 서구 문화의 수용을 제창하여 중국의 근대화를 추동한 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魏源이 밝힌 대로 『해국도지』는 군사서이다. 이 글에서는 군사 및 전쟁과 관련된 텍스트가 왜 세계지리서의 성격을 띠고 쓰여졌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통해 중국 및 동아시아 근대가 전쟁(해전)을 통해 비롯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검토하였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한국전쟁기 부산의 중등학교 여학생 교육 고찰-피란학교의 과외활동을 중심으로-
    • 저자
      주현희
    • 발행처
      조선대 인문학연구원
    • 발행년
      2022.02.28.
    본 연구에서는 전시 상황에서 여학생을 대상으로 시행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정규 교과를 대체하여 운영된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살펴보고 이러한 여학생 전시교육이 전후 국가 기반 조성과 국가 재건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아울러 살펴보았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에는 많은 피란민들이 유입되어 이들을 수용할 학교나 교실이 부족하였고 교육 자료의 수급도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1년 2월 문교부에서 「전시하 교육특별 조치요강」을 공포하였고 피란수도 부산의 교육제도 및 교육과정은 이에 맞춰 긴급하게 전개되었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남학생들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학도병으로 징집되었고 이로 인해 피란학교에는 남학생이 줄고 여학생의 수가 더 늘어났다. 이 시기를 전후로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의 운영이 활발해졌으며 여학생의 진학을 위해 여자고등학교도 신설되었다. 이처럼 전시 하에서 군 징용으로 남성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한글을 배우고 기술을 익혀야 했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는 전후 재건에 필요한 인적 자원의 육성을 위해 여성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전쟁 중에는 정규 교과를 운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 교육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기의 피란수도 부산의 여학생 교육은 근대 시기에 태동한 여성 교육이 전시하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숙, 발전하였던 시기였다. 전근대적인 여성 교육에서 탈피하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이 근대 여성교육으로 이어졌다. 여학생들은 중등교육을 위해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한 이후 고급 인력으로 성장하여 전후 국가 재건의 인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피란수도 부산의 여학생 교육을 되살피고 발굴하는 작업은 교육사적인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식민지 조선과 대만의 일본어 보급 실태 연구: 총독부의 교육정책과 초등교육기관의 학제를 중심으로
    • 저자
      이상원, 주현희
    • 발행처
      한국공공사회학회
    • 발행년
      2022.02.28.
    같은 시기에 일제강점기를 겪은 조선과 대만은 일제의 교육정책과 동화정책의 일환으로써 국어(일본어) 교육을 강요당했고 자국어를 말살 당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초등교육기관의 증가에 비해 중등,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이는 시세(時勢)와 민도(民度)에 맞춰 보통의 지식과 기능만을 습득시키기 위한 교육억제정책으로 국어(일본어) 보급에만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식민지 조선과 대만은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통해 서서히 황국신민으로 양성되어 갔다. 대만의 경우 조선보다 이미 15년 이전부터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게 되었고 조선 역시 1910년 한일 병합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되었다. 동시대이지만 역사와 사회적 상황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일제의 통치 방법과 교육정책에도 차이가 있었다. 그러한 양국에 있어서 교육정책의 목적과 본질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총독부의 교육령과 제도권 교육기관의 학제였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총독부의 교육정책과 그 일환으로 행해진 국어(일본어)교육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교육령을 중심으로 제도권 교육기관인초등교육기관의 학제를 비교‧고찰함으로써 일제가 식민지 조선 및 대만의 학령기 아동들에게 교육하고자 했던 정책을 비교·분석하여 국어(일본어)교육의 보급상황과 그 실태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한국전쟁기 유엔군의 원산 상륙작전과 철수작전을 통해 본 해상수송
    • 저자
      김윤미
    • 발행처
      인문사회과학연구소
    • 발행년
      2022.02.28.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유엔은 결성 이후 처음으로 ‘집단안보체제’를 가동하여 참전을 결정했다. 유엔군은 병력과 물자를 군함과 선박에 탑재하여 세계 각지에서 동북아 해역으로 집결시켰다. 한반도 대부분이 북한군의 진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모든 전략은 해군력이었다. 이글에서는 한국전쟁 동안 유엔군이 전개했던 해상수송과 해양통제 활동에 주목했다. 부산교두보를 확보한 이후, 한국전쟁에서는 큰 해전이 없었고, 일찍이 해상통제권을 확보하여 해군의 활동은 육상작전 지원과 해상수송으로 좁혀졌다. 그런데 유엔 해군은 휴전협정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1953년 7월 27일까지 폭격과 포격 등 해상봉쇄를 전개한 곳이 있었다. 바로 원산이었다. 원산은 일제시기 북한지역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일찍이 개항된 원산에 철도와 항만공사가 시작되어 성진, 청진, 흥남, 나남 등 북한 서쪽지역의 교통, 산업, 경제 중심지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글은 첫째 한국전쟁과 해군의 해상작전의 전개를 살펴보았다. 한반도 해역에서 북한군의 해군력이 일찍이 붕괴한 상황이므로 한반도 전역의 제해권은 유엔 해군이 장악했다. 유엔 해군은 상륙작전, 철수작전, 해군항공 폭격, 소해작전, 해상수송작전, 해상봉쇄작전을 반복하며 전개했다. 둘째 한반도 해역의 작전과 함선 이동을 검토했다.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은 육상수송과 함께 상륙작전을 통한 지원을 적극 선택했다. 셋째 한국전쟁에서 원산의 지정학적 역할과 군사적 대응을 고찰했다. 한국전쟁에서 수송과 전투를 고려한 해상작전이 전개된 곳은 부산과 인천, 원산과 진남포였다. 군사전략적으로 원산과 진남포는 ‘한반도의 좁은 허리 부분’이었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Perceptions and Experiences of Marine Education Culture in t…
    • 저자
      YANG, Minho / KIM Joonhwan
    • 발행처
      "차세대컨버전스 정보서비스학회"
    • 발행년
      2022.02.28.
    This study compared the cases of Korea and Japan to examine the effect of the maritime education culture of maritime museums on the participation intention according to experiential factors. This study conducted an online survey on 280 people who visited the Korea National Maritime Museum in Busan, Korea, and the Kobe Maritime Museum in Japan. The survey showed that three of the five experiential factors proposed in this study (emotional, sensory, and relational) had a positive relationship with the respondents' intention to participate in both Korea and Japan. Moreover, the emotional factor had the most significant influence among the experiential factors affecting the intention to participate. The findings implied that maritime museums should improve not only their operational method of focusing on hosting information-oriented exhibitions but their emotional relationship with the viewers. This study provided theoretical and practical implications by conducting an empirical analysis of the effect of experiential factors on the intent to participate in maritime education culture through maritime museums. The findings of this study could also be applied to improve the quality of visitor experience and provide policy feedback.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해양관광도시의 도로표지 언어경관 연구:부산과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 저자
      양민호
    • 발행처
      융복합지식학회
    • 발행년
      2021.12.31.
    최근 언어경관 측면에서 도로표지의 실태에 대해 주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미흡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해양관광 도시의 도로표지 현황과 행태를 조사하고 표기의 경향이나 다언어 표기의 패턴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부산과 요코하마의 도로표지 이용자 280명을 대상으로, 개인적인 특성 관점에서 심미감과 실재감이 정보유용성 및 이용자만족에 미치는 영향을 구조방정식모형(SEM)을 사용하여 실증적으로 검증하였다. 분석 결과, 부산과 요코하마의 이용자 모두 심미감과 실재감이 정보유용성에 대하여 유의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정보유용성은 이용자만족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유의한 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심미감보다 실재감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결과는 실무자가 언어경관(도로표지)을 설계하고 실제로 적용하는데 있어서 인지적 기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언어경관(도로표지)이 효과적으로 실행되었는지 판단하기 위한 준거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접근법으로 도로표지의 메커니즘을 통한 관광도시의 전략 수립 및 운영에 실제로 활용이 가능한 언어경관의 관리 방안에 기여를 할 것이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일본패전 후 재만주 일본피난민의 실상과 북한유입 및 남하탈출
    • 저자
      공미희
    • 발행처
      아시아문화학술원
    • 발행년
      2021.12.31.
    이 글의 연구목적은 일본패전 후 만주에 진입한 3군(소련군, 중공군, 국민정부군)의 정책에 따른 재만주 일본피난민들의 실상에 대해서 살펴보고 또한 만주피난민이 가장 많이 유입된 평양과 함흥을 중심으로 이들이 남하로 탈출하기까지의 실상과 특징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연구방법으로는 패전 후 재조선일본인의 귀환체험을 기록한 사료와 시의성(時宜性)의 신문을 활용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 재만주 일본피난민은 3군의 주택 강제 접수, 소지금과 물건 약탈, 부녀자 폭행 및 강제노동 사역 등으로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평양과 함흥에 유입된 만주피난민들도 의식주생활의 악화로, 개인 및 소규모적인 탈출을 시도했으나 대부분 역송되었고 차츰 소련군 간부들의 묵인으로 집단탈출도 개시되었다. 특히 함흥에서의 이소가야 스에지의 귀환활동이 돋보였고 한층 1946년 12월 공식적인 귀환협정이 맺어졌을 때는 재주일본인의 97%가 이미 탈출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고는 일본패전 후 동북아에서 일본인이 3군 및 조선인과의 갈등과 인구이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평양과 함흥 이외의 도시에 유입된 만주피난민의 귀환특징에 관련된 후속 연구가 계속 되기를 기대한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근대 동아시아의 ‘해양’ 관련 논의에 대한 고찰 -인식,학문,담론을 중심으로"
    • 저자
      서광덕
    • 발행처
      중앙대학교 외국학연구소
    • 발행년
      2021.12.31.
    It is after modern times that the marines have been collectively noticed at the national level, and the world has been connected through the expansion of marine transportation, and human and material cultural exchanges have been developed along the way.,This drove globalization, and this flow also included the East Asian region.,The East Asian region, which accepted modern civilization through the ocean, relativized the sea, accepted modern knowledge through the sea and converted it into a national state.,The national states have driven the territorialization of the sea, which has led to the conflict and confrontation of the sea, and in this regard, returning the sea to the place of reconciliation and peace is linked to postmodernism.,In this article, the recognition surrounding the sea, the study formed by the sea, and the area (sea area) theory formed around the sea were summarized based on the existing research.,Based on this theorem, I would like to see the possibility of a new academic field called the humanities of the sea.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해방직후 북한거주 일본인의 실상과 갈등 및 귀환 연구– 평양을 중심으로 –
    • 저자
      공미희
    • 발행처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 발행년
      2021.12.30.
    This study considered the actual conflict and the official repatriation process and characteristics of Japanese residents of North Korea, especially Pyongyang, after liberation to escape to South Korea, an unofficial repatriation process. Since August 10, the Soviet military government has been stationed in North Korea to ban Japanese people from moving to outside areas, and has sent a number of young men to the Soviet mainland and Siberia's maritime provinces for various services. The Japanese were looking forward to returning home in the opposite of the luxurious life they had before the defeat. However, they had no idea of the timing of their repatriation and had to live as an escape at all times by Soviet tyranny. In addition, all savings such as banks and post offices were received and unavailable immediately after the end of the war, and there was a limit to enduring the severe cold due to high prices. The Japanese living in Pyongyang tried to stow away and escape from the South by individual or small scale, especially because Pyongyang was concentrated in various governments, including Soviet occupation agencies, and there was a stronger crackdown than other regions. The massive escape of the Japanese began at the end of February 1946, and the conflict of hardship in the escape process was beyond description, and there were also many casualties. In particular, the Japanese, who had been moved from Chueul to Jinnampo and waited for their repatriation ship, have taken many lives due to the outbreak of malignant measles and typhoid fever. Shortly after the mass escape was almost completed, the official repatriation of the Japanese was announced and an agreement was reached on their repatriation. The first official repatriation ship, Yeongpunghwan, entered Wonsan in December 1946, and it was discovered that the Japanese in Wonsan, Munpyeong, and Heungnam took the repatriation ship, and after that, the second ship left the port in March 1947, July, November 1948.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시데하라『朝鮮教育論』(1919)에 나타나는 식민교육정책 고찰 - 동화교육을 중심으로
    • 저자
      이상원,주현희
    • 발행처
      대한일어일문학회
    • 발행년
      2021.11.30.
    일제가 통감부시기부터 한국인에게 강요한 제국주의의 식민교육정책은 일제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이식하여 일제에 동화하도록 교육하는 것이자 지배의 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서는 궁극적으로 식민지 조선인의 정체성을 삭제하여 일제의 황국신민으로 기르기 위함이었다. 통감부시기 일제의 문부성의 명령으로 외국인 교사의 신분으로 도한(渡韓), 외국인 교사로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한국 학부의 ‘학정참여관’으로 활동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일제의 식민지교육정책의 기반을 만든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1870-1953)이다. 학정참여관으로 근무하며 작성한 「한국교육개량안」은 ‘모범교육’으로 구현되며그의 퇴임 후,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의 기초가 되며, 그가 저술한 한국사 및 식민지 조선에 대한교육정책에 관련 된 다수의 편찬서는 일제가 강요한 식민교육정책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할 수 없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일제의 식민교육정책의 기반을 만든 시데하라의 행적과 동향을 분석하고, 그가 일본으로 귀국 후 식민지 교육의 이론가로 활동하면서 저술한 『조선교육론』(1919)를 중심으로 그가 가진 조선인 동화교육에 관한 견해와 방법, 그리고 신념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이식하고 창출하고자 했던 내용과 양상, 아울러 조선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오키나와 전투와 방언 논쟁에 관한 연구-차별과 갈등의 관점에서-
    • 저자
      양민호
    • 발행처
      명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발행년
      2021.11.30.
    본 연구는 오키나와 전투와 방언 논쟁을 통해 언어에 대한 차별 의식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밝히기 위해 방언논쟁이 시작된 계기와오키나와 전투에 얽힌 방언 차별문제에 대해 파악하고자 하였다. 현대에는 오키나와 방언이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하나의 표현 코드로 성장하였다. 그렇지만 오키나와 전투 시기에는 오키나와 방언은 사라져야할 언어이며, 국민국가 통합을 저해하는 하나의 걸림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은불편과 차별을 겪는 오키나와 주민에게 있어서 방언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불평등을 감수하라는 뜻이다. 표준어 장려정책을 펼치면서 국어는 국민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입받아온 교육 때문에 타자(他者)로부터가 아닌 오키나와 현민스스로가 오키나와 방언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쟁을 통해 하나의 국가를 꿈꾸어왔던 정부에게 오키나와 방언과 같은 지역어는불필요한 언어인 것이고, 갈등과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오키나와 전투와 방언 논쟁 연구를 통하여 오키나와 방언 화자의 정체성 형성에 외부 요소와 상황이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07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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