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문자료실

Total 149건 3 페이지
    • 제 목
      한국 원양어업 연관 기업변천사 연구:㈜남양어망의 사례를 중심으로
    • 저자
      주현희
    • 발행처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서강인문논총
    • 발행년
      2022, vol., no.65, pp. 285-319 (35 pages)
    본 연구는 국내 원양어업 발전기에 번성한 어망 제조사인 남양어망의 기업사 고찰을 통해 한국 원양어업 관련 산업사의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고찰과정에서는 남양어망과 동시기에 존재했고, 현재까지도 건재한 일본의 니찌모의 발전과정을 함께 살펴, 남양어망의 쇠락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하였다. 남양어망은 한국의 어망 제조 업계의 선구자로서 1980년대에는 세계 110여 개국에 어망을 수출하였다. 또한 니찌모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원양어업 어망을 제작하고, 자체 기술개발에 성공하는 등 국내 독보적인 기업이었으나, 2004년 폐업하였다. 반면 남양어망의 자체기술 개발에 많은 영향을 준 일본의 대형어망 제조사인 니찌모는 일본 수산업의 부흥과 함께 크게 번성하여 오늘날 일본의 대형수산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남양어망과 니찌모는 같은 시기에 공존한 동종 기업이다. 그러나, 1995년부터 시작된 연안국의 200해리 어업규제와 원양어업의 쇠퇴기를 맞아 추진한 기업 전략은 이들 두 기업의 기업사(business history)에서 다르게 나타났다. 대외적인 환경 변화 등의 요인으로 수산업과 원양어업의 쇠퇴를 맞은 일본 수산업계는 기존 사업영역의 ‘육지화 전략’을 추진하였다. 니찌모 역시 이 전략을 추진하였고, 성공하였다. 그러나 남양어망은 육지화 전략에 실패하였으며, 자사의 독특한 물류체계에 따른 물류비 부담, 개발 비용 등으로 인해 부도를 맞았다. 한때 세계적인 어망 제조사로 부상했던 남양어망은 1970년대~1980년대 한국 원양어업사의 한 편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본 연구에서 고찰한 남양어망의 변천사는 한국 원양어업의 흥망성쇠를 투영하고 있다.
    • 제 목
      어업이민을 통한 해방 후 해외이주정책의 이해
    • 저자
      최민경
    • 발행처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인문과학연구
    • 발행년
      2022, vol., no.75, pp. 229-250 (22 pages)
    본 연구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어업이민이 어떠한배경과 과정을 거쳐 추진되었는지를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어업이민은 원양어업정책의 하나로 등장, 진행되었으나 국제적인 해양질서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급격하게 동력을 잃었다. 수산청에게 어업이민은 당시원양어업이 직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반드시추진해야만 하는 사업이었으며 원양어선사 또한 이에 동조하는 형태였다. 어업이민은 등장부터 실행까지 아르헨티나 연안의 풍부한 어장에만 기대어 이루어졌고 다른 고려 요인들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업이민의 본질은 ‘사람’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리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이동하는 이민이 처한 거시적, 미시적 조건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된 결과는 영주 정착은 물론 송출 자체의‘실패’였다. 특히 일반적으로 해외이주법이 강조하던 바를 넘어 EEZ제도 도입에 대한 대응, 해외어업기지 추가 확보라는 보다 구체적인 의의를 가지고 원양어업정책과의 교차 속에서 추진된 결과, 수산청의 낙관적인 전망과 ‘의지’가계속해서 강력하게 작용하였고 결과적으로 송출 그 자체를 위한 이민사업이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어장 개발 등의 측면에서 어업이민이 대한민국 원양어업사에서 일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해방 후 해외이주정책의 성격, 특징이라는측면에서 보면 어업이민 또한 기타 이민사업 전반이 그러했듯이 이민의 당사자성은 부재한 채 국가의 경제발전담론에 회수되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제 목
      Similarity Measurement Between Titles and Abstracts Using Bi…
    • 저자
      존 믈랴히루,김종남
    • 발행처
      한국융합신호처리학회/융합신호처리학회 논문지 (JISPS)
    • 발행년
      2022, vol.23, no.3, pp. 143-149 (7 pages)
    This excerpt delineates a quantitative measure of relationship between a research title and its respective abstract extracted from different journal articles documented through a Korean Citation Index (KCI) database published through various journals. In this paper, we propose a machine learning-based similarity metric that does not assume normality on dataset, realizes the imbalanced dataset problem, and zero-variance problem that affects most of the rule-based algorithms. The advantage of using this algorithm is that, it eliminates the limitations experienced by Pearson correlation coefficient (r) and additionally, it solves imbalanced dataset problem. A total of 107 journal articles collected from the database were used to develop a corpus with authors, year of publication, title, and an abstract per each. Based on the experimental results, the proposed algorithm achieved high correlation coefficient values compared to others which are cosine similarity, euclidean, and pearson correlation coefficients by scoring a maximum correlation of 1, whereas others had obtained non-a-number value to some experiments. With these results, we found that an effective title must have high correlation coefficient with the respective abstract.
    • 제 목
      요코하마항구의 변천과정과 특징 연구 :공간특성과 이동에 주목하여
    • 저자
      공미희
    • 발행처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일본연구 (JAST)
    • 발행년
      2022, vol., no.93, pp. 7-34 (28 pages)
    本論文は空間特性と移動に注目し、横浜港の変遷過程と特徴について分析したものである。横浜開港場は内外商人によって商業貿易が活性化され、同時に異文化交流の空間でもあった。また横浜は生糸第1港と呼ばれるほど独歩的で、近代的港湾を造成するために第1、2期築港工事を実施した。しかし、1923年の関東大震災と第二次世界大戦により都市の半分が破壊され、横浜は復興および再生に力を注ぐこととなる。更に1950年代から60年代にかけての港湾法改正と「港湾整備5カ年計画」を皮切りに、港湾機能拡充および本格的な都市再生を実施し横浜の再発見とともに文化的都心部強化事業として埠頭一帯を再整備した。特に都市再生プロジェクトである6大事業の一つ、都心部強化事業は横浜市が指向する自立的な都市構造の確立を目的に施行したもので、みなとみらい21事業がそれに該当する。横浜市はこの6大事業により、横浜を誰もが住みたがる都市にするという趣旨が強かった。したがって、その基本目標だった港湾都市、工業都市、住宅都市がそれぞれの機能を充実させることで生活の質が向上し、横浜独自の機能を生かして国際文化都市へと発展させていった。そして、このような横浜港の歴史的背景に基づき、港文化と都市発展の相関性に関する特徴6つを導き出した。 横浜開港場では「ハイカラ文化」を受け入れるべきだという政府の強圧的な制度があったが、日本人は異文化交流空間で外国の西洋文化が自然に受け入れられた。これは横浜が特に他の都市より最も早く近代的都市を形成する土台になったのだ。それと同時に、この近代的な考え方が港都横浜と呼ばれるほど政治·経済·文化の中心軸となり、またこれを土台に横浜は港文化として独占的な地位を確立することができた。すなわち横浜は西洋の近代的な考え方と建築物などを模倣する過程で国際的感覚が生まれ、この感覚を再び自国の発展に応用することで再び日本らしさの港町に成長·発展させたのだ。
    • 제 목
      군항도시 사세보(佐世保)와 시민 저항: 1968년 미국의 ‘엔터프라이즈 호’ 입항 문제를 중심으로
    • 저자
      이상원
    • 발행처
      동북아시아문화학회/동북아 문화연구
    • 발행년
      2022, vol.1, no.72, pp. 257-270 (14 pages)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Japanese navy in 1872, Japan's maritime defense was established in Yokosuka, Hiroshima, Maizuru, Kyoto, and Sasebo, Nagasaki, respectively. As confirmed in this paper, the arrival of the nuclear-powered aircraft carrier Enterprise into the Sasebo Port in 1968 developed into a commotion different from that of nuclear-powered submarines, which had occurred several times before. It can be seen that this is not a problem that can be viewed only as a matter of fact. Sasebo has long served as both a military port and a coal mining area, but in the era of energy transition, coal mine closures have occurred one after another. In the case of agriculture and forestry, which played an auxiliary role, only the aspect of a naval port city began to be highlighted due to the flood. Of course, there were positive views on the entry of the Enterprise because it was the economic merit of the military port due to the consumption of the US military, but in the background, the reality of bars targeting foreigners was revealed to the world. In addition, the first-generation former carrier of the Enterprise, which entered port in 1968, destroyed the Japanese forces in the Pacific War. The name of a ship with the same name as the aircraft carrier that carried out the Kyushu air raid would have made entry into the port even more unacceptable for Japanese people and especially Sasebo residents. As such, the protests of citizens that arose from the entry problem of the US aircraft carrier Enterprise on January 19, 1968, should be seen that The cause of the resistance of citizens should be seen as a complicated problem of the local economy, which had no choice but to rely on military ports, the political and social situation and reality entangled with the US Vietnam War and the name Enterprise is derived from a complicated problem.
    • 제 목
      양판희(樣板戲) <해항(海港)>을 통해 본 1960-70년대 중국의 대외원조
    • 저자
      김경아
    • 발행처
      동북아시아문화학회/동북아 문화연구
    • 발행년
      2022, vol.1, no.72, pp. 175-189 (15 pages)
    Model Opera is a literary and artistic play designed under the control of the Chinese Communist Party and was created for the purpose of promoting and educating the people of the Communist Party's political ideas. is the only Model Opera that was popular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set in the 1960s rather than the war period, and deals with events that take place in the process of transporting aid materials by Shanghai Port workers. was adapted by the party, including the planning of the play, the name of the character, the development of the event, and the song, and was completed after obtaining the final approval of the leadership. can be said to be a propaganda play that contains the Communist Party's foreign aid policy and political direction during the Cultural Revolution, and a cultural product that reflects the specificity of the time. Chapter 1 is an introduction to the characteristics of Model Opera and China's foreign aid policy in the 1960s and 1970s. Chapter 2 introduced the process and content of adapted from the original to Model Opera While the original work emphasized class struggle while highlighting the daily lives of workers in the Shanghai port unloading zone, Model Opera was adapted to emphasize the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according to foreign aid on the basis of the original work. Chapter 3 analyzed the characteristics of China's foreign aid policy based on the content analysis of Hai Gang. successfully depicts the image of China as a donor country by completing the “proletarian internationalism” by shipping foreign aid supplies safely to Africa against the bourgeois conspiracy.
    • 제 목
      基于SWOT分析的韩国引进中国留学生发展战略研究 -以2000年至2020年期间赴韩留学中国留学生数据为基础
    • 저자
      王誉璇,김현태
    • 발행처
      한국아시아학회/아시아연구 (JAS)
    • 발행년
      2022, vol.25, no.3, pp. 57-72 (16 pages)
    中国留学生是韩国国际教育产业的最大生源国,依据韩国国际教育开发院(KEDI)2000年至2020年统计数据显示:韩国国际教育产业引进中国留学生自21世纪起即进入高速增长和稳定发展期,其中经历多个历史时期的变化,可以通过数据统计和分析分为多个阶段;在此基础上,加以阐述韩国引进中国留学生相关的问题及其发展战略。在韩国留学的中国留学生在2019年达到高峰,在2020年后收到COVID-19全球大流行因素和多重因素作用,连续2年下降,事实上自2017年之后,赴韩留学生增加率有着明显的下跌趋势。韩国引进中国留学生的策略和现状对于韩国国际教育产业有着举足轻重的地位,其中既有“优势”和“机遇”,也面临“劣势”和“威胁”,通过SWOT分析以得出引进中国留学生受中韩关系、韩国留学政策、韩国大学等教育机构策略、学生学历提升需求的满足度等诸多因素影响。本文分析的自2000年至2020年间韩中教育交流的现状韩中留学生教育虽然有增进两国人民的理解等正面效果,但在韩语教育、学生管理以及不稳定的就业出路等方面仍存在着不足之处。随着在中国留学生增长态势的转变,韩国国际教育产业和政府引进中国留学生政策或逐步进行调整以应对,同时也开发其它国家的留学生生源市场。韩国国际教育产业为了加强从中国引进留学生,需要在进行引进优秀的中国学生、提供针对性课程、建立系统的留学生管理体系、提供就业机会等方面进行努力。通过以上问题的解决,希望两国留学生教育能够得到健康的发展。
    • 제 목
      미군정기 오키나와에서의 점령지역구제자금(GARIOA) 유학의 사회적 의미-귀국 유학생의 금문클럽 활동에 주목…
    • 저자
      최민경
    • 발행처
      동아시아문화연구/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발행년
      2022, vol., no.90, 통권 90호 pp. 138-162 (25 pages)
    1949년부터 1970년에 걸쳐 점령지역구제자금(GARIOA) 원조로 진행된 도미(渡美)유학은 제도의 지속기간, 배출 유학생 수 및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활동 등을 보았을 때 미군정기 오키나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창(窓) 중 하나이다. 본 연구에서는 특히 유학생들이 귀국 후 조직한 친목단체인 금문클럽(金門クラブ, Golden Gate Club)의 활동에 주목하여 오키나와-미국-일본 본토라는 ‘삼각관계’ 속에 착종하던 미군정기 오키나와에서 GARIOA 유학이 지녔던 사회적 의미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금문클럽은 어디까지나 귀국한 GARIOA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으로 설립 과정에 류큐열도 미국 민정부(USCAR) 등의 요청이 개입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금문클럽의 활동을 통해 USCAR 관계자와의 교류가 이뤄졌고, USCAR에서는 이를 통치에 적극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미군정기 오키나와 일반에서 보았을 때 금문클럽은 특수한 존재이자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금문클럽이 ‘친미엘리트’, ‘미군친위대’라는 ‘시선’과 마주한 방법은 스스로의 비정치성을 강조하고 외부적 유연성과 내부적 다양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지닌 금문클럽의 존재는 미군정기 오키나와에서 당시 사회 전체를 집어 삼켰던 ‘친미 대 반미’라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말해준다. 즉, 일반적으로 미군정기 오키나와를 이야기할 때 전제로 하는 ‘큰 이야기’로는 설명되지 않는 주체들의 집단으로서 금문클럽은 존재했던 것이며, 이를 통해 다양한 고뇌와 행동이 뒤얽힌 ‘사람’이 살아간 사회로서 미군정기 오키나와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제 목
      어업여건 변화에 대비한 근해어업의 에너지 효율성 평가
    • 저자
      남종오/전용한
    • 발행처
      수산해양교육학회
    • 발행년
      2022.06.30.
    This study evaluates the energy efficiency of offshore fisheries by year and gear in preparation for changes in fishery circumstances such as CPTPP and 2050 Carbon neutral roadmap, and provides policy implications based on the results. Accordingly, this study compares estimated technical efficiency using SFA with the energy intensity of offshore fisheries. As a result of the analysis, firstly, it shows that the energy efficiency of offshore fisheries by year is decreasing. Secondly, among gears in the offshore fishery, the energy efficiency of the fleet and the drag net fisheries whose have a large supply of tax-free petroleum is evaluated differently depending on the indicator, so the four indicators need to be complementarily used. Thirdly, it shows that there is a weakly positive correlation between the vessel-age and the energy intensity. Therefore, to improve the energy efficiency of offshore fisheries, it is necessary to shorten the calculation cycle of tax-free petroleum supply limit and reduce the number of fishing vessels in the fleet.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not only promote the development of fuel-saving fishing implements for drag net fisheries, also replace electric hybrid fishing vessels for aged fishing vessels.
    • 제 목
      오균요의 『금문』에 나타난 금문도의 의미화 방식
    • 저자
      이가영
    • 발행처
      중국인문학회
    • 발행년
      2022.04.30.
    본 연구는 그동안 금문도를 둘러싼 거시적 시각과 담론에서 벗어나, 오균요의 산문집 『금문』에 파편화되어 나타나는 작가의 기억 속 금문도와 그 시공간 속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와 금문도 주민들이 금문도에 대해 스스로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금문도를 어떻게 의미화하는가를 탐색함으로써, 금문도에 대한 다양한 이해의 모색을 시도한다. 오균요의 『금문』에 파편화되어 나타나는 금문도의 형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작가는 포격과 총소리를 비롯해 통행금지, 등화관제와 같은 군사적 통제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금문 주민들의 모습과 군사시설을 놀이터 삼아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전쟁과 일상의 공간으로서 금문도’를 형상화한다. 둘째,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금문도 사람들의 가난과 무지, 생존에 대한 불안, 끊어진 세대로서의 설움을 고백하듯 서술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열등감과 콤플렉스의 공간으로서 금문도’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셋째, 오균요는 금문도라는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았던 여러 군인의 삶과 죽음을 재현함으로써, ‘이향과 죽음의 공간으로서 금문도’를 그려낸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1970년대 한국의 수산정책과 북태평양 해역의 명태어업
    • 저자
      김윤미
    • 발행처
      아시아문화학술원
    • 발행년
      2022.04.30.
    1970년대 한국의 수산정책과 북태평양 해역의 명태어업김 윤 미** 요약: 이 글은 1970년대 한국 정부의 수산정책과 원양어업 지원 속에서 북태평양 명태어업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연구의 목적은 한국 수산업의 초기 전개 과정을 검토하고, 한국수산업사에 대한 이해를 제고해 보려는 것에 있었다. 이를 위해 1970년대 수출주도의 한국경제, 국민식량산업의 육성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수산업을 어떻게 지원하고, 수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 갔는지 궤적을 고찰했다. 한국 정부에서 추진한 1966년 수산진흥계획 수립, 수산청 신설 등의 정책이 북태평양 어업에 미친 영향, 북태평양 명태의 국내 유통 과정, 국외 환경 변화와 북태평양 어업의 재편을 본문에서 분석했다. 그 결과 1970년대의 수산정책과 어업의 특징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수산업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 러시아와 미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 선포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되는 전환의 시기를 맞이했다. 핵심어: 수산업, 배타적경제수역, 영해, 원양어업, 북태평양 □ 접수일: 2022년 3월 26일, 수정일: 2022년 4월 9일, 게재확정일: 2022년 4월 20일* 이 논문은 2017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6A3A01079869). ** 부경대학교 해양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Professor, Pukyong National Univ., Email: history-person@hanmail.net)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한국전쟁기 중학교 국어 교과서 내용 및 체계 연구-실제 활용 양상을 중심으로
    • 저자
      주현희
    • 발행처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발행년
      2022.03.31.
    본 연구에서는 한국전쟁기 간행된 중학교 국어 교과서의 내용 구성 및 활용 양상을 살펴보고 피란수도 부산에서 국어 교육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먼저 전시 상황에서 운영된 교수요목 및 교육과정을 살펴보고 이러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편찬된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교육 자료가 전쟁 상황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당시 피란학교의 교무일지 등의 학교사 자료와 아울러 살펴보았다. 전시 상황에서 피란수도 부산의 학교 교육은 문교부가 공포한 「전시하 교육 특별 조치 요강」에 맞춰 긴급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시 상황에서 피란학교에서는 교사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규교과 과정을 운영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전시 상황에 맞추어 정규교과 과정은 군 위문 활동 등의 특별 활동으로 대체하였으며 국어 교육 또한 이러한 상황에 맞춰 이루어졌다. 국어 교과서도 국군의 승리를 기원하는 글이나 위문편지 등을 학습 내용으로 구성하여 편찬하였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중·고등학교 국어교육 연구 -교육과정의 편제 및 교과서 내용 구성을 중심으로-
    • 저자
      주현희
    • 발행처
      대구가톨릭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 발행년
      2022.03.31.
    In this study examined how Korean language education was developed in the refugee capital of Busan during the Korean War and how it was operated by refugee School. The teaching points established during the U.S. military period were not properly reorganized due to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when the curriculum reorganization was discussed, and each school partially modified and used the teaching points of the U.S. military period according to the war situation. During the Korean War, many refugee schools were established in the refuge capital of Busan, but it was difficult to conduct regular classes due to insufficient supplies and educational facilities. However, despite difficulties in the operation of the regular curriculum under special circumstances during wartime, education continued. Accordingly, the refugee School operated school classes by applying a curriculum according to their respective conditions. A ceasefire agreement was signed in July 1953, and the curriculum was revised and promulgated on April 20, 1954. Accordingly, each school also returned to school to reorganize the school system, and school classes were normalized. In addition, Korean language education was actively conducted at each school. Wartime education in the refuge capital of Busan, was developed into real-life-oriented Korean language education that overcomes the disconnection of education and uses Korean in real life. And this can be said to be the basis for the reconstruction of post-war Korean language education. In this study, how Korean language education developed during the Korean War was examined through the U.S. military regular and middle and high school curriculum during the Korean War, and compared with the post-war revised and promulgated curriculum. In addition, the curriculum is intended to substantially implement education, and it is the textbook that consists of specific educational materials specified in the curriculum. Therefore, based on this curriculum, it was also examined how Korean textbooks were compiled and what contents and composition systems Korean textbooks published during the Korean War had.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 해군의 진해경비부 설치와 한반도 해역 작전 활동
    • 저자
      김윤미
    • 발행처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발행년
      2022.03.31.
    이 글에서는 1941년 창설되어 한반도 해역을 담임했던 진해경비부의 조직과 역할을 고찰했다. 일본 해군이 처음 한반도에 군사기지를 건설한 것은 러일전쟁 시기였다. 거제도 송진포에 임시 해군기지를 건설한 후, 대규모 군주둔지를 물색했다. 진해를 군항으로 설정한 일본은 한반도 해역 방어를 임무로 하는 진해요항부를 설치하고, 진해경비부로 재편했다. 일본은 진해의 해군 조직을 유지하며 주둔의 성격과 영역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태평양전쟁 직전 진해요항부는 폐쇄하고, 1941년 11월 20일 진해경비부를 설치했다. 교통로 확보와 주요 항만 방어를 하며 쓰시마해협의 항로 확보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소련 해군 방어에 중점을 두었다. 해상통제를 목적으로 통상보호부를 설치하고, 진해해군항공대를 편성하여 선박호위도 시작했다. 그러나 1945년 4월에 들면서 남쪽 항로는 모두 닫혔고, 유일한 항로는 동해뿐이었다. 바다를 통한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근간은 해군이었다. 해군에 대한 연구는 식민지 지배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일본군 연구의 일부를 규명할 수 있다는 점, 조선인 강제동원 규명을 위해 일본 해군 연구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 해군기지의 현장을 파악하고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한반도 해역을 경비했던 진해경비부의 활동은 현재까지도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진해 군항이다. 진해는 한반도 주둔 일본 해군의 본부였고, 한국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진해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이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 제 목
      中·臺·美의 금문도와 대만해협에 대한 인식변화 ― 냉전시기 대만해협을 둘러싼 중국·대만·미국 간 갈등과 대립…
    • 저자
      이가영
    • 발행처
      대한중국학회
    • 발행년
      2022.03.31
    냉전시기 대만해협은 중국과 중화민국의 국내외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 역할과 성격을 달리하며 동아시아 냉전지형의 변화과정에 핵심적인 무대가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 발생한 고령두전투에서 대만해협은 중국과 중화민국 간 세력싸움의 전선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동아시아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으로 분할되면서, 대만해협은 동아시아 냉전 진영을 가르는 분계선이 된다. 이후, 제1차 대만해협위기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며 대만해협은 냉전 지영의 확대를 위한 전장으로 변모하였으나, 무력충돌의 확대로 인해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안전의 위협이 되자 대만해협은 양자 간의 갈등을 안정시키는 진영봉쇄의 울타리가 된다. 이후, 중동 혁명의 지원과 대만해방이라는 기치를 내건 중국이 제2차대만해협위기를 시작하면서 대만해협은 또 다시 열전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중국과 미국의 회담이 진행되면서 대만해협은 중국과 중화민국간의 선전전이 진행되는 이념 전쟁의 장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6:1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HK+사업단님에 의해 2022-06-14 15:47:42 학술논문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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